우상을 만들지 말라…우상과의 싸움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80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어령 박사.
그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재철 목사와 함께한 첫 번째 대담에서 이 박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체득한 소신과 신념을 가감 없이 밝혔다.
양화진문화원(명예원장 이어령, 원장 박흥식)이 13일 오후 8시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에서
‘우상의 파괴’라는 주제로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의 첫 번째 인생 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대담에서 이어령 박사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쟁을 차례로 겪고 22살의 나이에
<우상의 파괴>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나갔다.
이 박사는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있는 나에 대한 정보와 실제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갭(gap)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을 메꿀 수 없다는 게 인간의 외로움이자 슬픔”이라며 “이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혀보기 위해서 올 한 해 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을 중심으로 내 진짜 목소리와 얼굴을 다 쏟아놓는다는 심경으로 이런 엄청난 ‘인생 대담’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이재철 목사는 “에세이스트이자 학자, 칼럼니스트, 소설가, 시인, 극작가뿐 아니라 문화부 장관, 88올림픽 행사 연출,
한일 월드컵 총괄기획 등 선생님처럼 한평생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 모든 걸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크리에이터(creator), 즉 창작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어 “크리에이터는 사전적 의미로 창조주를 뜻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50년간 무신론자였지만
크리에이터에게서 많은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박사는 “아버지는 창조적인 것, 남이 안 하는 것,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이 아니면 못 참는 분이셨고,
어머니는 문학 소녀셨다”며 “아버지에게서는 좌뇌(이성)를, 어머니로부터는 우뇌(감성)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평론도 하면서 창작도 하고, 논리적인 글과 여성적 감성의 글을 모두 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령 박사는 1933년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위안부 문제,
그리고 유년기 자녀교육에 관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국주의자를 찬양하는 곳이지, 영령들을 위로하는 장소가 아니”라며
“덮어놓고 일본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박사는 “일본의 한 배우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독일 수상이 히틀러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묘지가 아니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침략군들의 위패를 모아놓은 곳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은 한국이 ‘40년 후 몸 버린 값을 달라고 한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욕되게 하고 있지만,
왜 40년 만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한일회담 당시 3~40대였던 할머니들이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당당히 공개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
이 박사는 “할머니들이 돈 몇 푼 때문에 그러시겠는가. 그분들의 인권을 인정해달라는 외침을 일본은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에게는 일방적인 주입식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을 시도해 볼 것을 권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태어나기 전에 가치가 결정돼 버리면 결국 도구가 될 뿐”이라며
“어릴 때부터 세뇌시키듯 가르치지 말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상을 품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일방적으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읽으면서 상상력과 추리력, 직관력이 풍부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내 경우에도 지금 기억력은 많이 흐려졌지만, 초등학교 시절 <파우스트> 같은 책들을 읽으며 얻은 상상력과 추리력, 직관력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말했다.
대담의 후반부는 이 박사가 서울대를 갓 졸업하고 1956년 한국일보에 게재했던 <우상의 파괴>라는 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재철 목사는 “오늘 대담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은 수필이나 칼럼, 장편소설이 아니라,
'문단의 신'으로 군림하던 당대 최고의 작가들을 우상에 비유해 비판했던 글”이라고 소개했다.
<우상의 파괴>는 소설가 김동리를 ‘미몽의 우상’, 시인 조향을 ‘사기꾼의 우상’,
농촌 문학가 이무영을 ‘우매의 우상’, 평론가 채일수를 ‘영아(?兒)의 우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황순원, 서정주, 염상섭 등의 작가들을 향한 비판도 담고 있어 당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 글에 대해 이 박사는 “그분들을 우상이라고 욕한 게 아니라,
그들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려는 당시 젊은이들의 출세지향적인 모습을 비판한 것”이라며
“당대 문인들을 우상으로 만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내게는 ‘텅 빈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굿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유명세를 타기 위해 쓴 것이 아니냐는 설에 대해서는 “그런 글을 써서 유명해질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며 “<우상의 파괴>는 엄밀히 말해서 매니페스토(menifesto)였지 평론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문리대 학보에 ‘이상론(李箱論)’을 실었던 경력이 없었다면 아마 미친놈이라며 욕을 먹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 박사는 이 글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우상과의 싸움을 오늘의 시대에 적용,
마음속에 그 어떤 우상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신약성경을 보면 이름 없는 창녀들, 그리고 마리아와 나사로, ‘달리다쿰’으로 일어난 소녀 등 역사책에 나올 것 같은 평범한
개인의 얼굴들이 등장한다”며 “완벽한 이상(理想)이 성경에 존재했다면 우리가 신이 될 수 있으니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예전에는 모든 것에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면, 80대가 되면서부터는 모든 언어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우상과의 싸움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자유인들은 그 어떤 우상도 만들어선 안 된다.
죽으면 지문처럼 사라지는 한 생애를,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살아가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권면했다.
이 목사도 “아무리 걸출한 인물도 혼자서 되는 법은 없다.
그리고 시대와 맞물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는 시대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사회와 시대 앞에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며
“우리는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되고, 스스로 우상이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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