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에서 민족을 구원하라

05월 1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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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에서 민족을 구원하라

   

2008.07.23 00: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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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교회 주금용 목사님의 주일설교입니다
성경:출애굽기 20:1-6

아브라함의 어린 시절에 관한 전설입니다.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아브라함은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죄짓는 우상장사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우상장사를 하지 않으실까? 하면서 늘 생각하고 고민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 데라가 아브라함에게 저 신상들이 상하지 않도록 잘 지켜라. 고 부탁하며 출타하였다. 마침 그때 이웃집에서 음식 한 그릇을 가져왔다. 아브라함은 아버지께서 출타하신 틈을 타고 작고 큰 여러 가지 모양의 우상들이 진열되어 있는 신당에 들어가서, 우상들을 망치로 때려부순 후 그 중에 제일 큰 우상의 손에 망치를 끈으로 꽁꽁 묶어 쥐게 해 놓고는 음식 그릇을 우상의 앞에 갖다 놓았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버지 데라가 신당에 들어가 보니 신상들이 모두 목이 부러지고 팔, 다리, 허리 등이 꺾어져 있었다. 데라는 놀라고 화가 나서 아브라함을 불러 야단쳤다. 아브라함은 시치미를 뚝 떼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웃집에서 떡을 가져 왔기에 그 떡을 신상 앞에 두었더니 신상들이 서로 먹겠다고 소동을 부렸는데 결국 제일 크고 힘센 우상이 망치를 들고 다른 신상들을 모두 때려부수고 떡을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데라는 더욱 화가 나서 사람이 만들어 놓은 흙덩이 신상이 어떻게 다른 신상을 때려부수고 떡을 먹는단 말이냐? 하고 호통쳤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겸손하게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그래요, 아버지. 생명도 없는 우상이 어떻게 사람에게 명을 길게 하여 주고, 복을 준다고 하며 속여서 우상을 파십니까? 이제 이런 일은 그만두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 우상 만들어 파는 직업을 버렸다. 그리고 가족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옮겨갔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입니다. 왕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 나라를 망하게 하셨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용서하시고 회복케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이성을 주셔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양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하셨고 종교적인 본능을 주어 믿도록 하셨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지 말라는 이 두 번째 계명은 오늘 현대인들이 가장 덜 죄책감을 느끼는 계명이지만, 성경에서 이 계명은 다른 어떤 계명보다도 더 많이 강조하고 있다고.
첫 번째 계명이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끌어 올려서는 안된다는 계명이라면, 두 번째 계명은 하나님을 이 세상 어떤 것과 같은 위치로 끌어내려서는 안된다는 명령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 이 계명은 하나님을 섬길 때 섬기는 방법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이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목적만 좋으면, 방법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목적도 좋아야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도 좋아야 합니다. 제 2계명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바른 방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섬겨야 함을 이 계명은 깨우쳐 줍니다.
가나안에 입국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왜 하나님은 우상을 타파하고 잡신을 몰아 내고 무당을 전부 멸하라고 명령하셨는가?
우상숭배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오게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답을 주면서 건져내면 됩니다.
재앙을 받게됩니다. (출20:4)우상은 재앙의 원인이 되어지므로 우상을 꺾어야 합니다.
출애굽의 목적 (출9:1) - 우상의 도성 애굽에서 빠져나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상의 심각성을 모르고 언약의 소중성을 모르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객이 되어 고생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나오는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으로서 우상을 완전히 꺾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만 섬기면 축복이 오지만, 우상을 가까이하면 재앙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출애굽을 통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과 약속 (창12:1-3)이 있습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갈대아 우르) 우상의 도시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상을 멀리하고, 우상과 구별되어 하나님만 섬기는 축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 아브라함을 우상의 도시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의 도성인 세상에서(엡 2:2;세상풍속으로 사로잡힌 세상) 우리를 건져내어 구원하신 것은 우상에서 빠져나오고, 우상을 꺾은 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과연 우상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는가? 그리고 우상을 꺾고 있는가?
우상은 눈에 보이는 형상 우상도 있지만, 더 어려운 것은 보이지 않는 우상입니다. 그것은 곧 사상, 고집,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 말씀보다 더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들로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지기 쉬운 우상입니다. 바로 이 같은 우상들 때문에 우리가 기도 응답이 막히고, 은혜가 막히고 있는 것입니다.

1. 어떤 것도 형상화시키지 마십시오.

이제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그 우상을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는 이 계명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두 번째 계명은 하나님을 어떤 보이는 존재로 형상화시켜 섬기는 것을 금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보이시지 않기에 참 하나님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이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볼 수 없고, 너무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이같이 제한된 눈으로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보려고 한다면, 그 같은 욕구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런 제한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란 제한된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억나게 해주고, 생각나게 해주는 어떤 상징 혹은 형상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형상들이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상 자체를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민수기 21장에 나타난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입니다. 식물도, 물도 부족하게 되자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불뱀이 나아와 백성들을 물음으로 많은 백성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명하시면서, 누구든지 놋뱀을 보는 사람은 나음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명령하자 놋뱀을 보는 사람들은 뱀의 해독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놋뱀에 대한 기사가 열왕기하 18장에 다시 나옵니다. 히스기야왕이 여러 우상들을 깨뜨려 부술 때에, 모세가 만들었던 이 놋뱀도 부셔버립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이 놋뱀을 향하여 분향하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놋뱀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놋뱀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나게 해주는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징물을 사람들이 절하며 섬기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왕 히스기야는 이것들을 깨뜨려 부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느 형상, 어떤 물건과도 동일일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형상과 동일시 할 때, 성서는 그것이 우상숭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전쟁에 들고 나갔다가 빼앗긴 사건입니다. 법궤만 들고나오면 이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패배하고, 법궤를 이방민족에게 빼앗기기까지 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법궤, 성전,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를 깨우쳐 주는 거룩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과 동일시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형상으로 대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대신 어떤 형상을 만들고 그 형상을 예배하는 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우상숭배를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일본에는 8백만의 우상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점쟁이 노릇하는 사람이 5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신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신이시오, 온 인류와 우리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시는 유일하신 우주에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나야 될 분이고, 믿어야 할 분이고, 사랑해야 할 분이십니다. 그를 만나서 사랑하고 의지하면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용맹과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지만, 우상을 숭배하면 그 순간부터 비겁하고 미약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잘 믿고 섬길 때 이러한 우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러한 무익한 것들은 더 이상 섬김의 대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러한 우상에서 이 민족을 건져내는 기드온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우상 숭배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은 인간이 미련하고 어리석고 또 유혹을 받아서 만들게 되고 섬기게 됩니다.
우상 숭배로 인하여 안정과 평안은 깨어지고, 깨끗한 삶은 오물을 끼얹게 되고, 하나님이 주신 복된 가정은 그로 인하여 다 파괴되어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우상 숭배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파괴하며 더럽게 하고 파멸시킵니다.

(2)둘째로 이 계명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든 것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지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음 받은 것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외침입니다.
하나님은 형상화 될 수 없는 분이실 뿐 아니라 그분은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든 것과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결코 지음 받은 피조물로 대치되실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우상숭배라고 하면 우리는 돌이나 인간이 만든 어떤 형상 앞에 절하는 것을 연상하면서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은 더 이상 그런 미신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인들은 훨씬 더 교묘하게, 위장된 우상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들, 그것들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일 수 있습니다. 어떤 ideology, 이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제도나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민족주의나 국가 지상주의 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를 배우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화를 따라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포기한다면, 그 문화는 우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재물,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다면, 그러한 인생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만든 것들입니다. 어떤 형상, 어떤 우상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교묘한 우상들이 현대인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지 말라는 이 두 번째 계명, 많은 현대인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계명처럼 느끼고 있지만, 이 계명처럼 오늘 우리에게 도전과 각성을 안겨주는 계명도 많지 않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우상들이 우리의 영혼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형상화 시켜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것들은 결코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좌지우지하는 인생보다는, 내가 하나님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는 오늘도 교회 문턱을 부지런히 밟고 다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그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믿는 하나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입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대표적인 우상숭배의 이야기를 우리는 출애굽기 32장에서 발견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 40주야를 머물 때입니다. 백성들은 아론에게 가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니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자고 말합니다. 백성들이 금고리를 벗어서 모아오자 아론은 이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금송아지가 만들어지자 백성들은 큰 축제를 벌입니다. 이 금송아지가 바로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말하면서 춤을 추며 뛰어 놉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여전히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을 찾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술로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 신은 눈에 분명히 보일 뿐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신을 부르는 것 아닙니다. 낯선 신을 찾고있는 것 아닙니다. 똑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지어낸 하나님, 내 이성의 한계에 매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하나님입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이기에, 필요하면 찾을 수 있고. 필요 없으면 버려도 무방한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좋지만, 부담을 주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도 내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요리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편의에 맞게 내가 제작한 하나님입니다. 여전히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내가 지어낸 하나님입니다. 우상입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의 믿음을 살펴보십시다.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하나님, 하나님이라 해도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는 있지만,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은 나를 좌지우지 하셔야 합니다. 내 뜻 앞에서 그분이 깨어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가 깨어져야 합니다. 내 주관, 내 가치관, 내 패러다임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져야 합니다. 나를 깨뜨리시는 하나님, 그분이 진정 성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상이 아닌, 참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은 왜 질투하시면서 이런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란 말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요청하시는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시기하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 사랑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 대한 죄는 3,4대에 그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 대한 은총은 천대에 이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그 노함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비, 그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생들이 우상에 매어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인생들이 거짓된 것을 붙들고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 안에 진정한 자유와 진리의 길이 있는데,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며 방황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향해 명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말아라.
오늘 이 시대에는 옛날 같은 우상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섬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훨씬 발전되고, 훨씬 교묘한 우상들이 수많은 생명, 수많은 영혼들을 훔쳐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우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형상화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교회의 문턱을 밟고 다니지만, 우상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아침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상을 섬기는 자는 항상 괴로움을 당합니다. 우상숭배자는 악령에 의하여 늘 괴로움을 당합니다. 고난이 점점 쌓이게 됩니다. (마12:43-45) 우상숭배자는 가면 갈수록 비참해집니다. 생명 없는 교인의 모습(마12:43)이 꼭 그러합니다. 즉 종교생활 하는 자가 그러하다. 종교생활 하는 자는 고난이 많습니다. 종교생활 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성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성과 종교심의 우상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섬기고 있는 자들이 종교생활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생활 하는 자들은 무서운 사기를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수준 높은 전략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교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허구적 신념의 우상입니다.






 
기사게재일: [2003-04-14 오후 12: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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