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용사

07월 05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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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용사

   

2008.07.23 00: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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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교회 정영택목사님의주일설교입니다
성경:사사기 7:4-8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고 또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성경동화로서도 많이 들려지는 기드온 삼백용사에 관한 말씀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지배를 받을 때 일어났던 사사중의 한사람입니다. 그가 미디 안과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군대를 모으는 이야기들이 사사기에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삼백명의 용사가 선택되어서 이제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게 되 는데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삼백명 용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용사라고 하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처음에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서 백성을 모으려고 했을 때에 3만2천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2만1천명이 돌아가고 그리고 1만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훈련시키다가 다시 만 명 가운데서 삼백명을 남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늘 말하는 기드온 용사 삼백명이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미디안 군대에 대한 표현을 했을 때에 성경은 뭐라고 말 하냐 하면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 우리가 6.25전쟁을 겪을 때, 1.4 후퇴 때 왜 후퇴했습니까. 중공군의 인해전술 때문에 우리가 후퇴했습니다. 중공군들은 총도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총을 가진 사람이 열 사람 중의 하나, 스무 사람 중의 하나정도 총을 가졌고, 그저 양어깨에 수류탄 몇 개 달고 그리고 우리 한국 전쟁에 참여했다고 그럽니다. 끝없이 끝없이 밀려오는데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우리가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후퇴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1.4후퇴라고 얘기하는데, 제 이종사촌 동생가운데 그 피난 때 나가서 낳았다고 해가 지고 이름을 피란이라고 지은 아이가 있습니다. 피란, 피란 나가서 애기 낳았다 그래서 그 아이 이름을 피란 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전쟁을 할 때 군대의 숫자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기드온의 용사는 3만여명에서 만 명으로 그리고 만 명에서 다시 3백명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될 수 없는 이러한 군대를 하나님이 선발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사로 뽑으셨는데 이 하나님의 용사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두 가지 시험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이 본문 앞에 말씀이 나와 있는데 3만2천여명이 몰려왔을 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너희 중에 두려운 사람 겁이 나는 사람은 돌아가라 물러가라. 비겁하고 소심한 자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만2천명에서 2만 명이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이거 해도 너무 한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2만여명이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사가 되겠다고 왔지만은 결국은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인데 물러가게 되었다.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날 뛰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부수고 나팔을 불고 우리가 미디안과 더불어 싸워서 이겨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외칠 때에 야 해야지 그리고는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몰려왔다가 그들은 물러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모였다고 생각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깊은 생각이 없이 믿은 사람들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용사가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사람, 감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깊은 사고력 없이 믿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 간에 가서 하나님의 용사가 되지 못 하고 물러가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처음에는 흥분해서 와 하고 몰려왔지마는 기드온이 겁나는 사람 들어가라 그랬을 때 아이고, 잘 됐고만 그리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사, 하나님의 용사로 굽히는 사람은 깊은 생각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실존의 깊은 고민을 가진 사람,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밤새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민과 절망으로 몸부림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믿음을 확신하고 일어서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예수님이 또 어디를 가실 때 예수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 사람을 우리는 무리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군중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그 뒤로 열두 제자가 따라 왔고도 열두 제자와 더불어 좀더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따라오고 그리고 또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아마 그때에 종종 제자들은 좀 우쭐대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이렇게 돌아다보면서 뒤에 많은 무리들을 보면서 나는 너희들하고 다르다 우리는 그래도 제자다. 너희들은 쫄이다. 그래도 나는 차와코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따라왔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했어요 제자와 무리를 구분하지 않으시고 제자와 무리를 함께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혹시 그 때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아이, 선생님 그런 말씀은 우리들한테만 따로 말씀을 하시지 왜 쟤네들까지 섞어서 하십니까 우리들한테만 하시지요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와 무리를 구분하지 않으시고 함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 속에는 너희들이 정말로 제 자로 남겠는가 용사로 남겠는가. 정말로 하나님의 용사가 되겠느냐 아니면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무리가 되겠느냐. 하나님은 언제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 님의 용사가 되는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무리 편에 웅성거리는 사람 편에 안된다고 하는 사람 편에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 편에 우리는 거기에 서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용사 편에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골고다의 길도 영광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용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시험은 만명에서 삼백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분 훈련받을 때 얼마나 목이 마릅니까. 저도 5월말에 군대를 나갔는데 훈련을 받을 때 목마르더라구 요. 그런데 십분간 휴식! 하면 얼마나 달콤한 휴식입니까. 훈련받다 십 분간 휴식! 그러면 다들 나무그늘에 앉아 가지고 허겁대고 뭐 담배피고 그럽니다. 저는 그 5갈론짜리 물통을 두 개를 쥐고 막 뛰어갔어요 그리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옵니다. 펌프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데, 내가 물 길러 가는 모습을 보고 저 뒤에 십분 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동료들이 뭐라고 그러냐면 야, 저기 고문관 간다 고문관 멍청한 놈이라는 거죠 제가. `십분 간 휴식`하면 쉬어야 되는데 쉬지 않고 물통을 들고 물을 뜨러가니까 저기 고문관 간다 그리고 나이도 그 때 좀 들어서 군대를 갔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날 고문관이라고 하든지 뭐 주문관이라고 그러든지 뭐 내가 물을 떠가지고 오면요 날보고 고문관이라고 손가락질했던 걔네들이 아, 그냥 서로 물을 먹겠다고 우르르르 와 가지고 말이죠 `참 고문관이 떠온 물을 갖다가 왜 이렇게 맛있게 먹냐` 제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훈련받을 때 내내 훈련 기간동안에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뭐 제가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동료들이 저를 굉장히 존경합디다. 저를 많이 위해주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 6월에 훈련받을 때 물이 얼마나 귀합니까 이 아마 기드온이 군대들을 데리고 훈련을 하다가 시냇가로 가서 물먹어라! 그러니까 다 우르르르 가서 물을 먹는데 오늘 말씀에 보니까 여러분 대개 무릎을 꿇고 시골에서 옛날에 살 때에 그런 일을 많이 했는데 산골에서 샛물에 가서 그냥 입을 대고 뭐 그냥 입이라고 얘기하지만 주둥이를 대는 거죠 그렇죠? 이 입을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마시는 사람과 가서 손으로 이렇게 물을 움켜서 마시는 사람이 구분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냥 가서 개처럼 엎드려 가지고 물은 먹는 사람들은 돌려보내라 그리고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는 사람만 남게 해라. 이 사람들이 삼백명이 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구천칠백 명의 사람들은 훈련도 받았는데 하나님의 용사가 되지 못하고, 삼백명만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신앙의 절도와 절제와 규범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용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조심하면서 믿음의 장애가 되는 것들을 가려내면서 하나님께로 향하려고 하는 경건한 모습, 신앙의 의지 그 자세를 보고서 가려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릎을 꿇고 그냥 입을 대고 개처럼 핥는 자라고 얘기했지만 물을 핥아 먹었겠습니까. 그냥 벌컥벌컥 마신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지금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인데 조심성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적 자세와 고집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독선 속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의 성실성은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고집을 부리고 독선적인 사람은 성실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물을 움켜서 먹는 사람은 용이 주도한 사람입니다.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적을 생각하면서 깨어 있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해서 훈련중인데 함부로 머리를 숙이고 물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시험의 올무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좀더 성숙한, 훌륭한, 질이 좋은 하나님의 용사가 될 자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용사가 되고 하나님의 용사로 사는 것, 그것은 우리의 모든 신앙의 태도를 하나님을 향하고 모든 관심과 주의를 하나님께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무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이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그 믿음이 귀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근신하지 못하는 신앙, 경성하지 못한 신앙 소용없는 것입니다. 무익한 것입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결단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의 용사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사가 되지 못할 경우에 매우 불행한 결과가 생기는데 그것은 베드로도 사탄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의 용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감정도 아니고 순간적 결단이 아닙니다. 내 믿음의 지.정.의가 어우러져서 결단한 인격적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용사로 선택된 이 말씀 속에서 이런 교훈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우리는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 많은 사람이 부름을 받았지만 정말 소명 중에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믿음의 전선에는 복음 전선에는 언제든지 성별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차별을 주기 위해서 성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이기 위한 쓰임 받기 위한 성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성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믿음의 양을 요구하시지 않고 헌신의 질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3만2천명, 만 명의 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 님을 위해서 에스더처럼 정녕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헌신의 질을 요 구하시는 것입니다. 웅성거리고 우왕좌왕 하는 흔히 말하는 오합지졸을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일당백이라고 하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당백이 되어야 됩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은 삼일절, 3.1운동을 일으킬 때 우리 기독교는 우리 전체인구의 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역사의 일을 주도했습니다. 3%되는 기독교인들이.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25%라고 왕왕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문화를 주도합니까 역사를 주도합니까 정치를 주도합니까. 그저 줄줄이 잡혀가는 사람들을 보면 크리스천이요 장로요 집사요 권사요. 어떻게 하나님의 용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다는 것은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며, 성별 되었으며, 그것을 가지고 복음전선에서 수준이 있는 질이 좋은 헌신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사는 세상을 살아가나 세상에 물들 지 아니하고 많은 무리 중에 있지만은 선택된 자로 있으며 모든 사람과 함께 하지만은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별됨으로 살아가고 모든 사람을 위해 복음의 문을 열지만 복음,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사는 그런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는 이렇게 하나님의 용사로 선택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용사를 만드시기 위해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사사기 가운데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로다`. 하나님께서 3만2천에서 만명으로 만명에서 삼백명으로 선택하시게 되었는데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용사가 되게 하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는 것입니다. 내 손으로 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하셨다고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숫자를 말하고 물량을 말합니다. 많음을 말합니다. 그것이 승리인 것처럼 말합니다. 어제도 제가 어느 기독교 잡지를 보는데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우리는 성공한 사람, 큰 것을 가진 사람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그래서 목사도 큰 교회 목사여야 성공한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적은 일, 작은 자, 여기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 한자에게 그 강함을 나타내 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고,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사,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인가 나의 능력인가. 하나님의 손인가 나의 손인가. 하나님의 사랑인가 나의 의지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뜻 거기에는 약함도 강함이 됩니다. 십자가도 영광이 됩니다. 죽음도 자랑이 됩니다. 고난도 찬송이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때가 곧 강함이라.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약할 때가 강함이라. 하나님의 용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나님이 약한 자를 부르시고 약한 자를 쓰시고 약한 자를 이용하신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약하기 때문에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사는 내가 약하여 하나님만 신뢰하게 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용사 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병들었을 때 더 하나님을 찾죠. 소유가 없어졌을 때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죠. 삼손은 머리 깎이고 눈 빠지고 그리고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죠.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해 주세요. 힘이 있을 때는 기도도 안하고 빈둥대고 힘이 있을 때는 엉뚱한 짓 하더니 힘이 다 빠진 다음에야 눈 빠진 다음에야 하나님,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해 주세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하게 의지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를 많이 말합니다. 우리는 봉사를 많이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가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습니다. 나의 힘과 목숨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봅니다.
바로 이런 용사, 이런 하나님의 용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있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사는 하나님을 위해서 언제나 드릴 준비가 되어 있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고,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동시에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들고 드디어 수만명이 있는 미디안 진을 향하여 가지 않습니까. 제가 중국을 여러 번 왔다갔다했는데 제가 특별히 무슨 애국자고 해서 이런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한 번은 겨울에 중국을 갔습니다. 영하 한 18도, 20 도쯤 되는데 밖에 나가니깐요 진짜 이 귀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안되더라구요. 쌩하고 나니까 이게 없어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선교지를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장로님하고 저하고 둘이서 기차를 몇 시간 타고 쭉 가는데 계속 온 산에 눈이 꽉 차있습니다. 갑자기 독립군 생각이 나더라구요 야, 일제 때 이 산하를 누비면서 독립군들이 고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괜히 가슴이 좀 이상해지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독립군이 되려고 온 사람, 내가 독립군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온 사람들에게 면접을 할 때 이렇게 물었다고 말합니다.
자네는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

그러면 매맞아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두 번째로
굶어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그 리고 그 다음에
얼어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이 대답,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야만 독립군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독립운동 하는데 뭐 양식 있습니까. 죽을 각오로 왔는데 죽는 것도 뭐 편안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맞아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굶어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또 추운 겨울에는 얼어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독립군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사는 칭찬이 준비되었습니까? 아니죠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언제든지 무리가 있습니다. 군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사는 군중이 아닙니다. 무리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사는 열두 제자입니다. 70문도입니다. 120성도입니다. 이런 적은 무리가 주님과 가까이 있는 하나님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런 사람을 부르십니다. 열두사도를 부르십니다. 70문도를 부르십니다. 120성도를 부르십니다. 기드온의 삼백용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십자가를 질 각오가 되었는가. 멸시천대를 받을 각오가 되었는가.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믿음의 각오를 새롭게 하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용사로 일어나서 우리의 가정을 복음화 시키고 이 땅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 가는 그런 큰 용사가 되어서 정말 말로만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이 복음화 되고, 이 지역이 복음화 되고, 이 나라가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는 이런 일에 쓰이는 하나님의 용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사게재일: [2003-04-16 오전 9: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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