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돌아 오라

07월 05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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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돌아 오라

   

2008.07.23 00: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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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의 주일설교입니다
성경:예레미아 4:1-4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와세다 출신으로 새 세대를 대변하는 글을 써온 나가다니 아키히로라고 하는 일본 작가가 쓴 책입니다. 희망도, 꿈도 많지만은 수없이 좌절하는 20대를 위한 충고의 글, 그런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책 중에 있는 몇 마디를 소개합니다. `새로 운 일을 시작 할 때, 작심삼일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하는 글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심삼일…, 작심삼일…. 한번 결심하고 시작해서 그 마음이 삼일밖에는 못 간다. 의지가 약한 사람을 충고하는 말입니다. 이 현대 젊은이들에게 결정적으로 약한 것이 지구력이 없어요. 생각 도 많고 머리도 좋고 마음도 다 있는데 도대체 뭘 하나 꾸준하게 하지를 못해요. 그게 결정적으로 허점이올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해보지 않으면 만약 작심 삼일이라고 해서 오늘 와서 다시 해 보지 않는다면 작심삼일로 끝날지, 혹은 지속하게 될지도 모를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무엇을 결심해 도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한다면 그 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요. 또 세 번째는 해 보았지만 잘 안 되었다고 하자. 그럼 잘 안되었다는 것, 그걸 공부하게 되고 또, `조금만 참았다면 지속할 수 있었는데`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그 것만 깨달아도 훌륭한 것이고, 사흘 밖에 실천 못 하고 그만 무산되었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자신을 스스로 파악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지구력 하나가 내게 없었구나….` 라고 깨닫는 그것만 가지고도 큰 소득이라 는 것이지요.
여러분 영어 단어를 외워보셨습니까? 학교 다닐 때 이거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한 번 딱 보기만 하면 그저 딱 기억이 되고 다시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얼마 나 좋겠어요. 그런 것을 Photograph Memory라고 그럽니다.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사람들……. 한 번 딱 보면 그 전장 페이지가 다 기억이 나는 거예요 사진 찍듯이. 그러면 뭐 그거 문제가 없지요. 그러나 여기에 대한 일반적 연구는 그렇질 않아요.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해요. 나만 머리가 둔하고, 없는 나쁜 게 아니라고요. 한 단어를 외우는데, 여러분 한 번 콘사이스를 뒤질 때마다 거기다가 표시를 해 보세요. 딱 표시하고, 얼마 후에 표시하고. 다섯 번을 보아야 기억을 합니다 평균. 아마도 다섯 번 보면, 웬만큼 멍청하지 않은 사람은 다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한번보고 잊어버렸다고 해서 자기를 탓하는 거예요. `너는 구제불능이다, 너는 머리가 나쁜가 보다…….` 나쁜 게 아니예요, 그게 보통 이예요. 다른 사람은 다섯 번 이상 콘사이스를 뒤져서 그래서 그 단어를 외운 거예요. 그러니까 노력이 부족했던 거지 결코 머리가 나빴던 게 아니예요. 그런데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은 꼭 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 아니오, 지극히 정상적이요. 그럴 알아야 합니다.

베이비 루스라고 하는 사람은 홈런 왕으로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칠백열네 번의 홈런을 날렸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만은, 그가 천삼백삼십 번의 스트라이크 아웃 당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삼백삼십 번의 스트 라이크 아웃이 있고, 칠백열네 번의 홈런이 있었던 거예요. 실패 없는 홈런이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이 불을 켜고 삽니다 만은 이 전등을 만들 때, 에디슨이 이걸 만들 때에요 사백 몇 번의 실패를 했다고 해요. 사백 몇 번의 같은 실패를 하고야 나서 이걸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사백 번 실패 한 것은 생각지 않고 한 번 성공한 것만 생각하더란 말예요. 그 뒤에는 사백 번이라고 하는 뼈아픈 실패가 있었던 거예요. 그런고로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요. 작심삼일이라도 좋으니까, 작심일일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결심하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실패는 방치하면 독약이 됩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깊이 연구해서 잘 살피게 되면 이건 양약이 됩니다. 실패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것이 죄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맹세하라. 내 앞에서 다시 서약을 하라.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 오라.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내게로 돌아 오라, 다른 말로 말하면 다시 만나자 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여, 여기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마는 원본대로 번역을 바꾸면은 우상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 섬기던 백성이 아 이게 우상을 섬긴다니 말이 안되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지금 우상을 섬기고 있어요. 그 더러워진, 신앙적 정조가 깨진 더러워진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돌아 오라,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다시 돌아 오라! 그리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만나자고 말합니다. 여기 에 만남의 초청이 있습니다. 청소년과 젊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해서 한 사백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21세기를 내다보면서 가훈을 정 한다면 어떤 가훈을 정할 것이냐?
하고 물어 보았는데, 그 통계가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제1위가 뭐냐 하면 `가끔 얼굴 좀 보고 살자` 하도 얼굴들을 못 보니까? 서로 얼굴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제발 얼굴 좀 보고 살자, 이 중요한 얘기가 아닙니까? 제2위가 `사생활 을 존중히 여기자` 그 5위가 IMF를 당해서 너무 어려워서 이런 얘기가 나온 거 같아요. `끝까지 살아남자` 살아남기가 어려우니까. 어쨌든 오늘 성경말씀은 내게로 돌아 오라, 내 얼굴을 좀 보라, 내가 너희들 좀 보고싶다 그거예요.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 오라. 이미 더러워진 자인걸 알면서도 또다시 기대하시고 부르시는 겁니다. 아예 심판 해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람, 저들은 절망했는데 하나님은 절망하지 않았어요. 오늘도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겁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시카고에 어느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죽은 사람은 세살 짜리 어린아이 입니다. 세살 짜리 어린아이 시체를 놓고 장례식을 합니다. 목사님이 기도 할 때에 다들 눈을 감고 있었는데, 초라하게 더러운 옷을 입은 거지 행세의 남자 하나가 들어왔어요. 그 시체에 세살 짜리 어린아이의 시체에 있는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35센트에 팔아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이 어린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세살 짜리 자기 딸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 신발을 벗겨다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이런 인간, 이걸 누가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금수만도 못한 거지. 다 끝난 인간 아닙니까? 그러나 이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될 때, 구원을 받고 멜트라더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요 유명한 부흥사가 되고 시카고 역사에 기록되는 훌륭한 부흥사입니다. 이 사람은 주로 알코올 중독자를 상대로 전도해서 수천 명의 알코올 중독자를 주님 앞에 인도했습니다.
여러분 이 같은 사람도 주님께로 돌아오면 새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돌아오는 것이 문제요, 나 스스로 무엇을 해 보겠다고, 나 스스로 뭐 결심, 부질없는 짓이요.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말씀하시고 `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가르쳐 맹세하라.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살기로 맹세하라` 다시 맹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이요, 공평은 이웃 에 대한 공평이요, 정의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는 정직함이올시다 정의올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부르실 때 거저 부르신 것만이 아니요, 번번이 실패하는 나약한 존재임 을 아시기에 원인과 또 고칠 수 있는 방법까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인을 알기 때문에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마라. 얼마나 귀중한 교훈인지 모릅니다. 농사 이치라는 것은 좋은 토양이 있어야 되요. 토양, 땅이 있어야 되요. 그 다음에 좋은 종자가 있어야 되요. 그 다음에 비가 오고 또 그리고 햇빛이 잘 나서 이런 자연 여건이 좋아야 되요. 네번째는 농사꾼의 정성어린 수고가 있어야 됩니다. 이 네 가지가 합쳐서 농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토양입니다. 이 토양이 좋지 않으면 농사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자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고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고 가시덤불 과 같은 마음이 있다. 말씀하지 않습니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또 돌짝밭과 같은 마음이 있다. 종자는 좋은데 이 토양이 나쁘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거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생명적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창조적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고로 토양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묵은 땅을 갈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화전민이란 말을 들어봤죠? 화전민이라는 것은 저 깊은 산 속에 가난 한 사람들이 살면서 그 산을 그대로 불을 질러 버려요. 나무를 베고 불을 질러서 새까맣게 태운 다음에 그 것을 갈아서 거기다가 농사를 지어먹는 사람을 화전민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다가 씨를 뿌리려거든 불을 질러야 되요. 다 태워버려, 또 그리고 돌을 제하고 그게 모든 것을 깨끗이 다 옥토, 좋은 흙이 그 토양이 나올 때까지 수고를 한 다음에 소중한 종자를 뿌려야 하는 것이죠. 그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얼마나 중요한 교훈입니까?
이 묵은 땅이라는 것은 버려진 땅을 말합니다. 다 버려졌어요. 그리고 관심 밖으로 버려진 것을 말합니다. 잡초가 우거졌어요. 그 속에는 좋은 땅이 있지만은 가시덤불이 있으면 거기 씨앗이 땅에 떨어질 수가 없고, 떨어져도 자랄 수가 없어 요. 그러니까 가시덤불을 제거 해야죠? 이것이 그만 좋은 종자의 생명력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이런 준비가 좀 필요합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워밍하지요 워밍! 워밍아워가 있어야 됩니다. 생각난다고 결심하고 뛰쳐 올라간다고 운동이 되는 건 아니요. 저희 교회의 교인 가운데 제가 결혼 주례 해 준 그런 권투를 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절 만날 때마다 너무 피곤해 해요. 그 체중 조절하느라고 굶고 막 이래서요, 삐적 마르고 얼마 나 고생을 하는지 몰라요. `저 이거 좀 계속 못 하겠습니다. 그래 다른 걸 해 먹을 수도 없고 큰 걱정입니다. 배운 건 이거밖에 없고` 그리고 늘 고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그랬더니 한 번 게임에 나가려면 석 달 동안 훈련을 한데요. 맹훈련을 하고 그것도 마지막 한달 동안은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합숙 훈련을 하면서 그 험한 코치의 지시를 따라서 얼마나 호된 훈련을 하고 거기에 올라가서 한 번이기든 지든 한 번 뛰는 거예요. 얼마나 힘든 일 입니까? 이걸 알아야 되요. 우리는 만사를 너 무 쉽게 생각하거든요. 그게 아니지요. 공부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공부라는 거, 그냥 내가 오늘 공부하고 싶다고 공부가 되나요, 공부도 워밍아워가 필요해요. 너무 많이 놀면은 다시 공부하기 힘들어요. 공부가 안됩니다. 그래서 놀 때도 설사 휴가 맡아서 놀러 가도 책을 가지고 가야 되는 거요. 하루 에 적어도 몇 시간은 꼭 책을 보아야지 아주 완전히 놀아 버리면 다시 공부 하려면요 마음잡는 데만 몇 달 걸립니다요. 그래 무드 잡다가 세월 가는 거죠. 그래 안 되는 거예요, 그거는요. 그런데 우리는 만사를 너무 쉽게만 생각을 한단 말이예요. 그 미신적 신앙입니다. 적어도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피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불을 질러 버리는 땅아 갈아엎는 그런, 그런 수고가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사실 제가 유학을 이거 두 번 했는데요, 60년대하고, 70년대 초에 했는데 유학 갔다가 와서 한 9년 동안 이따가 다시 갔는데 그 9년 동안에 공부 안 한 거 아닙니다. 계속 공부도 했고 또, 학교에서 가리키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시 9년 후에 다시 갔는데요 공부가 안 되는 거예요. 제가 한 학기하고 그만 둘까 하고 생각했었어요.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한 학기를 다시 지내고 나니까 그 다음에 길이 열리기 시작을 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만사가 공짜로 되는 게 아니에요. 준비하는 것만 가지고 이러한 꼭 시간이, 워밍 아워가 필요하다. 결심 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이렇게 버려진 땅, 오래 해 묽은 땅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이걸 옥토로 만들려면 상당한 손질이 필요하고 또 하나는 이 묵은 땅이라는 것은 무의식 상태를 말합니다. 습관화되고, 체질화되고, 성품화 되어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지요. 그저 방종과 게으름과 사치와 낭비와 거짓과 혈기와 이런 것으로 점철되어 왔어요. 이 아주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이게 죄인지 아닌지도 몰라요. 뭐 잘 못됐다고 생각지도 안 해요. 뭐 사람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뭐 인간인고로 뭐 이래가면서 이게 다 망조라고요 지금. 완전히 이렇게 체질화되어 버렸거든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뀌는데는 땅을 갈아엎는 것 같은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되요. 또 하나, 이것은 고질화 된 것을 말하고 병리적인 고집이나 정당화 된 것이요. 자기는 지금 자기 생활을 완전히 정당화하고 있고, 고정관념에 빠져 있어요. 이걸 깨뜨려야 해요. 오랫동안 해 묵은 거예요. 수 백년 동안 묵어 온 것 이예요. 우리나라의 경제가 잘못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봉건주의적 기업이기 때문이예요. 한 마디로 축소하면은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이걸 못 벗어나기 때문 에 문제라고요. 양반 되려다가 망 한 거예요. 돈만 벌었으면 되지 양반까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양반 인체 하다가 망한 거예요. 다 뭐든지 고정 관념이 있어요. 해 묵은 거예요. 오랫동안 묵어온 것 이예요. 지금도 가끔 결혼 같은걸 할 때 보면은 뭐, 뭐 저 족보를 따지고 그, 그 집이 저 쌍놈 아니냐?
뭐 그래요. 양반 좋아하네 지가 무슨 대단한 양반이라고 이 고정관념, 이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 모든 방면에 관계가 되거든요. 익숙해지고 의식화된 것으로 벗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묽은 땅을 갈아엎어라! 그리고 잡초를 제하고 다시 씨를 뿌리라. 다시 말하면 이 옥토와 종자가 깨끗이 만나 야 되거든. 토양과 씨앗이 만나야 되요, 아주 깨끗이. 여기에 아무 방해요소가 있어선 않데요. 여러 지금 이렇게 설교를 듣고 있는 바로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잡초가 왔다 갔다 해요. 이 문제라니 까요? 어느 지난 몇 주일 전에 예배드리는 동안에, 도중에 세분이 이렇게 나갔어요. 그래 제가 나가는 걸 저는 보고 아마 정말로 급한 일 이 있는 가 보다.
뭐 그렇게 생각했죠? 뭐 그럴 수 있으니까. 나가는 걸 보면서 설교를 했어요. 그 다음에 그 아들이 제게 편지를 했는데 너무 죄송하다고, 이렇게 중간에 나가서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 나간 이유는 어머니가 집에 가스 불을 끄지 않고 왔다고 해서 이게 자꾸 생각이 나서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고 해서…….
그래 내가 속으로 생각했어요, 분명히 가스 불 저거 껐을 거예요. 안 껐을 꺼다 생각하니, 이거 생각하는 동안 말씀이 한 마디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이 되겠어요? 적어도 이 한 시간만이라도 제발 정 못 하겠거든 30분만이라도 제대로 옥토가 되어서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어떤 분들은 또 이상한 도전을 해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요상한 잡초가 있어 가지구요, 가시덤불이 있어 가지고요. 목사님이 사랑합니다, 사랑하세요. 하고 하면요 속으로 뭐라는지 아세요? `저는 사랑하나?` 그래요.
참으세요.
그러면은 `에이, 목사님 저도 못 참던데? 말은 잘 하네`, 이러고 돌아가는 거예요. 이 게 되겠어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희생을 했습니다. 하고 말하면은 아멘 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거야 사도 바울이니까 그렇지요` 속에서 뒤척뒤척하고 있어요. 이 가시덤불 언제 빠질 거요 이게, 싹 다 지워버리고 불태워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대로 끼끗한 마음으로 수용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떨 때는 설교하면서 가만히 들으면요, 부부간에 앉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면요 옆의 남편을 꾹 찌르면서 잘 들어둬! 그러는 거 같아요 보니까? 자기가 들을 생각은 안 하고 왜 남자, 이건 꼭 내 누군가가 들어야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것도 가시덤불 이예요. 불질러버려! 당장. 다 지워 버리고 깨끗한 옥토가 되어 가지고 그리고 말씀을 받아야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 말이에요. 토양의 문젭니다. 여러분 새해를 맞아서 뭘 생각하십니까? 엄청난 일, 굉장한 일, 계획하시겠습니까? 그보다는 Simple mind, Pure receptivity, 아주 깨끗한 수용성을 가져 봅시다. 이제는 말씀을 들을 때 깨끗한 마음으로 들어요. 옥토가 되어서 받아들여 순수한 수용, 아주 깨끗한 순종과 온유와 겸손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로 나갑시다.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 오라! 묽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마라.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 오라. 그럴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사게재일: [2003-04-14 오전 11: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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