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터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가 ‘웨스터민스터’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과 연관돼 있다. 1643년 영국의회는 당시 국왕이었던 찰스 1세와 분쟁이 발생했는데 이를통해 ‘청교도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영국의회는 영국교회가 공통으로 따를 수 있는 신앙기준을 수립하기위해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분별력있는 신학자들을 웨스터민스터사원에 모이게 해 5년동안 회의끝에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만든다. 그리고 이에따른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도 만들었다.
이 문서는 미국으로 건너가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 장로교회(PCUSA)의 표준이 되었다. 웨스터민스터신학교는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떨어져나와 1929년 9월 25일 메이첸 교수(Dr. Machen)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개혁주의를 따르는 웨스터민스터신학교는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신조(Creed)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웨스터민스터신학교는 올해 9월 25일로 80주년을 맞게된다. 한국교회의 성장기에 많은 목회자를 배출했던 웨스터민스터신학교는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이 그리 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