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장점 중 하나는 작품을 고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즌이 거듭될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 한국 대중가요계에 팝발라드 열풍을 일으킨 작곡가 이영훈(1968~2008)이 주로 가수 이문세(53)와 호흡을 맞춰 내놓은 주옥 같은 곡들로 꾸민 '광화문 연가'는 이런 점을 적극 수용한 모범적인 사례다.
지난해 초연한 이 뮤지컬은 이번 두 번째 시즌 무대에서 한층 완성된 공연을 선보인다. 이미 '옛사랑'을 시작으로 '사랑이 지나가면'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등 이영훈의 히트곡은 작년부터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내용은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 사랑하는 여인을 키다리아저씨처럼 돌보는 '상훈', 곁에 있는 여자가 자신의 사랑임을 알면서도 형을 위해 단념하려는 '현우',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지만 아픔을 간직한 비련의 여인 '여주'의 가슴 시린 사랑을 그리는 건 매한가지다. 극중극으로 현재의 상훈이 자신의 음악으로 콘서트 '시를 위한 시'를 올리는 가수 지용을 만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같다.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동선이다. 지난해 '광화문연가'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세상을 뜨기 전 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한 이영훈이 광화문과 거리가 가까운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뮤지컬을 올리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화문연가'를 공연하기에 3000석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너무 크다. 과거 인물과 현재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등 동선이 상당히 복잡한데, 배우들이 등·퇴장하는 데 무리가 따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인물들의 겹치고 엇갈리는 관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효율적인 세트 전환을 위한 마름모꼴 모양 무대 특징도 살리기에 버거웠다.
이런 점에서 현재 공연 장소인 총 1100석의 역삼동 LG아트센터는 안성맞춤이다. 마름모꼴 모양의 무대 경사의 곳곳이 눈에 들어오고 배우들의 등·퇴장도 수월하다. 이 작품 특징 중의 하나인 LED 영상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데 힘이 들지 않는다.
내용 면에서는 마지막 부분을 수정한 것을 특기할 만하다. 초연에서는 출연 배우들이 검은 옷을 입고 등장했다. 극중 상훈의 죽음이 자연스레 이영훈의 죽음으로 치환됐기 때문에 의례 차원이었다. 의도는 이해하나 이는 무겁고 작위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밝은 모습으로 공연하는 장면으로 끝낸다. 이로 인해 이영훈 노래의 따뜻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번 시즌에 '여주' 역으로 새로 합류한, 가창력으로 손꼽히는 뮤지컬배우 정선아(28)다. 지난해 최고 티켓 파워 뮤지컬배우로 뽑힌 정선아는 이번에도 여주를 연기하는 리사(32)와 함께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
리사는 지난해 초연 당시 단독으로 여주를 맡아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1막 마지막에 극의 상황과 맞물리며 관객을 전율케 한 '그녀의 웃음소리뿐' 열창은 대단했다. 민주화 열기가 불붙던 1980년대 학생운동 도중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여대생의 비명과 이런 상황에서 가수로 데뷔하는 리사의 절규가 급작스레 겹쳐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이다. 리사 외에는 이 장면을 맡을 배우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으나 정선아가 무리 없이 소화한다.
커튼콜 이후 배우들과 관객들이 어우러져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과 '붉은 노을'을 부르는 모습은 이문세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다만, 조연배우들이 가창력이 고르지 못한 점과 극의 중간마다 몰입을 방해하는 작위적인 웃음 코드는 흠이다.
이 뮤지컬의 초연을 연출한 이지나(48)씨가 이번에도 총지휘했다. 가수 조성모(35)가 '상훈'을 맡아 뮤지컬에 데뷔했다. 초연 당시 상훈을 연기한 록밴드 'YB'의 윤도현(39)이 조성모와 함께 이 역을 번갈아 한다. 뮤지컬배우 박정환(40)과 최재웅(33), 이율(28), 서인국(25), 떠오르는 그룹 '인피니트' 멤버 성규(23)와 우현(21) 등이 출연한다. 3월11일까지 볼 수 있다. (5만~13만원. 광화문연가. 1666-8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