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와 빨간 사랑

07월 0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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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와 빨간 사랑

   

2008.07.28 00:5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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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글을 쓰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부럽고 꼭 갖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능력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글은 단순한 재주나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삶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김치의 깊은 맛이나 하루 종일 은근한 불 아래서 졸여진 뼈 국물처럼, 진중한 삶이 바탕이 될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글이 나오는 것이리라.

작년 겨울로 기억된다. 선배 기자와 함께 민형자 사모님이 있는 대덕교회를 찾아갔다. 산 속에 숨겨 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는 대덕교회를 보는 순간,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만난 김춘기 목사님과 민형자 사모님은 말 그대로 참 푸근한 분이었다. 마치 구곡리가 팔 벌린 어머니의 품속처럼 푸근하듯 말이다. 교회에서 만났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도 오래 동안 기억에 남는다. 참으로 즐겁게 찬양을 드리던 어르신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이리 때가 많이 묻은 건지, 한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민형자 사모님이 낸 「포도주와 빨간 사랑」은 <뉴스앤조이>에 `대덕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과 새롭게 쓴 글들을 엮어서 낸 책이다. 특히 유방암 판정을 받고 암과 투병하는 과정이 담담하지만 간절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암이라는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을 식구들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이 전혀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문장 하나 하나에 담긴 진실 때문일 것이다.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시원한 물로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비비며
머리 감는 일로 개운한 하루를 시작하리라.
향기 좋은 샴푸라면 더 좋겠다.

절대 부스스한 모습으로
가족들의 식탁을 차리고
그대로 길거리에 나다니는 게으름은
피우지 않으리라.

바람 부는 날이면 곱게 빗질을 하고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바람결에 날리는 머리카락의 흩날림을
손으로 쓸어올리며
앳된 소녀처럼 강가를 걸어보리라.

혹시 미장원에서 실수로
내 머리를 망쳐 놨을지라도
투덜대지 않고
머리카락이 아직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리라.

-본문 82페이지

그의 책이 암과 싸우는 무거운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구곡리 사람들과 10년이 넘게 지내면서 생긴 갖가지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어느 개그맨보다도 웃기는 순박한 어르신들이 이야기도 있고 콧날이 찡해지는 사연도 보인다. 이 모든 사연들이 저자의 따뜻한 마음에서 녹아져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책을 읽는 동안, 참 여러 생각을 했다. 단지 한번 가봤을 뿐인 구곡리가 고향처럼 그리워지기도 했고, 사모님의 깔깔 웃음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를 자른 후 쓰신 글을 읽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돌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도 했다. 마음 한 구석이 썰렁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기사게재일: [2003-04-12 오후 7: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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